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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사건에서의 성인지 감수성과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
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박상현 변호사
2024.01.25

'2023년 엘박스에서 가장 많이 복사된 판례' 의 담당 변호사가 직접 판례를 해설해 드립니다. 

 

 

성희롱 사건에서의 성인지 감수성과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

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사실관계

◌◌대학교의 컴퓨터계열 교수인 A는 소속 학과 여학생인 피해자 B, C, D 등에게 2013. 2학기 또는 2014. 1학기의 수업 중 뒤에서 안는 듯한 포즈로 지도하는 등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하거나 볼에 뽀뽀를 해 달라고 요구하는 등의 부적절한 언동으로 수차례 성희롱 하였다. 이를 이유로 2015. 4. 10.  해임 징계처분을 받았다.

이에 A는 자신이 피해자들에게 성희롱 행위를 반복하여 한 사실이 없고, 설령 유사한 행위를 한 바가 일부 있다고 하더라도 성(性)적인 의도 없이 수업이나 대화 중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으로서 성희롱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주장하면서 해임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청심사를 청구하였다. 2015. 7. 8. 소청심사에서 청구가 기각되자 다시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주요 쟁점

A에 대한 징계사유를 인정할 증거는 피해자들의 진술 외에는 달리 없으므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주요 쟁점이다. 특히 주요 피해자인 B를 비롯한 다수의 학생들이 A의 강의에 대해 우수하고 유익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점, B가 성희롱 발생 이후인 2014. 12.경 A로부터 크게 질책을 받은 일이 있었고, 그 이후 A에 대한 신고가 이루어진 점 등이 신빙성을 다투는 주요 근거로 부각되었다.

사건의 경과

가. 제1심 판결의 요지

제1심은 피해자 B에 대한 일부 징계사유(5개 중 2개) 및 피해자 C에 대한 징계사유는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 B에 대한 나머지 징계사유(5개 중 3개)와 피해자 D에 대한 징계사유는 모두 성희롱 내지 품위유지의무 위반행위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인정된 징계사유만으로도 A에 대한 해임처분은 징계재량의 일탈·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A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서울행정법원 2017. 1. 20. 선고 2015구합76889 판결)

나. 제2심 판결의 요지

제2심은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에 이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징계사유를 모두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피해자 B가 익명으로 이루어진 강의평가에서 A의 교육방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점,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A의 적극적인 교수 방법에서 비롯된 것인 점, 피해자 B가 계속 A의 수업을 수강한 점, A가 평소 피해자들을 비롯한 학과 학생들과 격의 없고 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주 농담을 하기도 한 점, A의 친밀감의 표현을 과장한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점 등의 사정을 고려한 것이었다.  

그리고 설령 징계사유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A의 언동은 적극적인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고 친밀하게 지내던 중 아무런 고의 없이 이루어진 일이라는 점, 피해자들이 대부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아니하다가 길게는 1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후 피해자 B의 문제 제기로 같이 신고하게 된 것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 A에 대한 해임처분은 그 비위 정도에 비추어 지나치게 무거워 징계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남용한 것이어서 위법하다는 이유로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해임처분을 적법하다고 본 소청심사결정을 취소하였다. (서울고등법원 2017. 11. 10. 선고 2017누34836 판결)

다. 대상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 유념할 점 및 성희롱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판단하는 방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피해자는 이러한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신고하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성희롱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따라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대법원은 이러한 법리에 기초하여 제2심이 설시한 논거들은 피해자들의 진술을 배척할 사유가 되지 않는다거나, 법원이 성희롱 피해자들이 처한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은연중에 가해자 중심적인 사고와 인식을 토대로 평가를 내렸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제2심의 판단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성희롱의 성립 요건 및 증명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심리를 다하지 못한 위법이 있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하였다. (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판례 해설

가. 성인지 감수성을 인용한 최초의 사례임

대상판결은 그간 학계에서도 아직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던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를 대법원이 처음 인용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상판결이 인용한 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은 ‘국가기관 등은 양성평등 실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고, 제3조 제2호에서도 성희롱에 관하여 ‘업무, 고용, 그 밖의 관계에서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공단체의 종사자,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를 말한다’고 정하고 있을 뿐 성희롱 사건에 대한 심리의 기준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대상판결을 통해 법원도 양성평등기본법의 적용을 받는 국가기관으로서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면서, 성희롱 관련 소송에서 심리 기준의 하나로  성인지 감수성을 명시하였다.

다만, 대상판결에서는 ‘성인지 감수성’의 의미에 대해서는 밝히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성인지 감수성’은 ‘일상생활 속에서 성별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이나 불균형이 있음을 인식’하거나 ‘성폭력, 성희롱 사건에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함’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대상판결에서의 ‘성인지 감수성’의 의미가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상판결이 선고된 이후,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폭력 사건 등 여러 성폭력 사건에서 반복하여 사용되고 있다.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법원이 대상판결을 통해 ‘피해자다움’을 경험칙에 빗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던 종래의 가해자 중심적 심리 방식에서 벗어나 성인지 감수성을 바탕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도록 한 이후로, 하급심 심리의 경향은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 성희롱 관련 사건의 증거판단에 관하여 일응의 기준을 제시함

대상판결은 성희롱 관련 사건을 심리·판단함에 있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관점, 특히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정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성희롱이나 성폭력 등 성 관련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 단둘만이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기 쉽다는 특성 때문에 피해자의 진술 외에는 달리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고, 그 경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인정 여부가 사건 심리의 관건이 된다.

진술증거의 신빙성의 판단은 법관의 자유심증에 의하는 것인데, 통상 ① 진술의 주요 부분이 객관적인 사실관계에 반하는 경우, ② 진술의 주요 부분에 모순이 있거나 일관되지 않는 경우, ③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술 내용이 경험칙에 비추어 합리적이지 않는 경우 등에는 신빙성이 배척될 수 있다. 특히 성희롱이나 성폭력 등 성 관련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 내용이 상식이나 경험칙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렵거나 비합리적이라는 취지로 다투는 경우가 흔했고, 이러한 점이 인정되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배척되기도 하였다.

즉 기존에는 피해자의 특정 행위나 언행에 대해 이것이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라면 경험칙상 하기 어려운 행동이나 언행에 해당한다면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는 경우가 많았다. 요컨대 피해자는 피해자다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경험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이러한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경험칙은 가해자 위주의 시각에서 보는 편견에 해당할 수 있으므로 이를 경계해야 하고 피해자의 관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제2심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함에 유력한 근거로 제시한 것은 성희롱을 당했다면 왜 그 즉시 신고를 하지 않고 길게는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이후에 했냐는 것, 그리고 A교수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면 어떻게 A교수의 강의를 계속 수강하면서 강의 평가도 긍정적으로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이러한 근거는 가해자의 시각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즉, 대학교에서의 교수와 학생의 관계에서는 성희롱을 신고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자칫 학생으로서 여러 가지 불이익을 입을 수 있는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고, 피해자로서는 이러한 2차 피해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므로, 곧바로 신고하지 못하였다거나 강의 평가를 좋게 기재했다고 하더라도 A교수로부터 강의를 듣고 학점을 받아야 하는 피해자 학생의 관점에서 보면 피해자의 행동들이 경험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정도를 판단함에 있어 일반평균인의 입장이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와 동일한 일반 평균인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폭력 피해자의 대응 방식과 심리 상태 등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나 성폭력에 이르게 된 경위, 성폭력 전후의 정황 등을 모두 살펴야 하는데, 이때 일반평균인의 관점이 아니라 해당 상황에 놓인 성폭력 피해자와 동일한 일반 평균인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관점에서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피해자의 반응(이른바 ‘피해자다움’)을 기준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을 한다면 이는 자칫 경험칙에 반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만, 해당 상황에 놓인 성폭력 피해자와 동일한 일반 평균인의 입장이라는 개념도 여전히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 또한 성인지 감수성을 토대로 피해자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는 것이 일반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경험칙에 어떻게 부합하는 것인지도 의문이 들 여지도 있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서 형사재판의 기본적 법 원칙인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원칙과 ‘성인지 감수성’의 법리에 따른 자유심증주의의 원칙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 것인지도 고민이 되는 부분으로 생각된다. 이에 관해서는 향후 여러 관련 판례와 연구 결과들의 적립을 통해 점차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담당 변호사의 직강 포인트

대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의 법리를 제시하며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을 피해자다움에 빗대 판단하지 말라는 취지로 판단함으로써, 성폭력 사건에서의 피해자 진술을 살필 때 성폭력 피해자와 동일한 일반 평균인의 시각이 아니라 그냥 사회 일반인의 시각 또는 가해자의 시각에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항상 경계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다만 성인지 감수성의 법리가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을 맹목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아니고, 피해자의 행동이나 언행이 아무리 성인지 감수성의 법리에 따라서 보더라도 여전히 모순되고 비합리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의 입장이나 또는 피해자와 동일한 일반 평균인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여전히 피해자의 행동이나 언행이 모순적이거나 비합리적이지는 않은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illustrator 이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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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변호사
사법연수원 30기로 2001년부터 약 11년간 서울행정법원 등에서 판사로 재직했다. 2012년부터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소속 파트너 변호사로 일하며 행정 소송 분야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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