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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은 양자택일해야 하는 것인가?
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6 다 81035 판결
김영호 변호사
2024.01.25

'2023년 엘박스에서 가장 많이 복사된 판례' 의 담당 변호사가 직접 판례를 해설해 드립니다.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은 양자택일해야 하는 것인가?

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6 다 81035 판결

글머리에

“가을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일고, 집집마다 감나무엔 빨간 감이 익어 간다. 가을걷이에 나선 농부의 입가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바라보는 아낙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우리 모두는 차가운 머리만을 가진 사회보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법의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 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이 사건에서 따뜻한 가슴만이 피고들의 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도 그들이 편에 함께 서 있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이다.”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쫓아내 달라고 요구하는 원고의 소장에서는 찬바람이 일고,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의 눈가엔 물기가 맺힌다.”

위의 내용은 모두 대전고등법원의 판결의 일부를 적은 것이다. 2006. 11. 1. 선고된 대전고등법원 2006 나 1846 건물명도사건의 판결문으로 그 당시에 많은 언론에 등장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아름다운 판결’ 이나 ‘따뜻한 판결’로 검색하면 많은 자료를 볼 수 있고 어떤 곳에서는 판결문 전문을 보여주고 있다.

그 후 2009. 4. 23. 대법원에서는 2006 다 81035 호 건물명도사건을 통해 위 판결을 파기하여 환송하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위 고등법원판결이 선고되고 그 판결을 선고한 재판장의 인터뷰까지 소개했으면 기사 한 줄로라도 그 판결은 대법원에 상고되어 파기되었다고 적어야 할 것이나, 언론의 속성 중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시의성’이 떨어지고 스스로를 멋쩍게 만드는 일이라서 그런지 그 유명한 ‘아름답고 따뜻한 판결’에 대하여 대법원에서는 찬물을 그렇게 무참히 끼얹었다는 기사나 보도를 보지 못했다.

사건 당사자의 대리인이었던 자가 그 판례에 대하여 평석을 쓴다는 것이 옳지 않을 수 있으나 ‘나쁜 선례를 만들기 위하여(원심판결문 11쪽) 엄동설한에 칠십 노인을 집에서 내쫓으려는 목적으로 찬바람을 일으키는 소장을 제출하여 많은 이들의 눈가에 물기를 맺히게 한(원심판결문 12쪽) 변호사’의 자기변명 정도로 이해하여 주시면 좋겠다.

법률가들이 법해석의 원칙으로서 추구하는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을 끝없이 양자택일해야하는 가치로 생각하여 온 데 대하여 대법원에서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그 기준을 명확히 했다고 본다. 하급심 판결이나 대법원 판결에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있으나 그 내면에 흐르고 있는 법해석 원리의 본질을 드러내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어 검토하게 되었다.

사실관계

하급심에서 인정한 사실관계와 실질적인 사실관계로 볼 수 있는 대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가 다소 다른 측면이 있어 하급심이 인정한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하고 다른 부분은 따로 표시하기로 한다. 원고는 임대주택법에 따라서 임대사업을 하는 자로서 1999. 2. 19. 피고 1과 임대차 기간을 5년으로 정하여 임대주택 1505호(25평)에 대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다. 피고1(딸)은 임대아파트의 임대차계약서상 임차인이고 피고2(아버지)는 1999. 6. 1. 1505호에 입주하여 임대주택에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다.

임대주택법상의 임대의무기간이 경과하자 분양전환하기로 하고 우선분양권자인지를 살펴보았다. 임대주택법상 입주일로부터 분양전환당시까지 당해 임대주택에 거주한 무주택자인 임차인이 우선분양 받을 자격이 있다. 아버지는 75세의 노인이며 1955년경 결혼하여 2남 2녀의 자식을 낳아 길렀다. 1999. 9. 14. 경 돌아가신 어머니는 뇌경색으로 인하여 거동이 불편하여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심한 후유증이 남았기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못하여 평소 아버지 대신 돈을 관리하고 있던 딸에게 임대차 관련 일 처리를 부탁하였다. 아버지로부터 일 처리를 부탁받은 딸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번거롭고 법에 무지하여 임차인을 자신의 이름으로 하고 실제로는 아버지가 살게 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임대차계약상의 금원은 아버지의 돈으로 처리하였다.

사건의 경과

가. 제1심 판단 내용

1505호 임대차계약서상 임차인인 딸 부부는 다른 주택을 소유하고 있어 우선분양 받을 자격이 없었다. 이에 아버지는 자신이 실질적인 임차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아버지에게 우선분양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원고는 아버지가 계약서상의 임차인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분양요청을 거절하고 명도소송을 제기하였다. 제1심 재판에서는 원고청구가 인용된 데 반하여 항소심에서는 아버지가 실질적인 임차인이고 입법목적과 정책적인 측면에서 법률해석을 할 때 실질적인 임차인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취지에서 피고들에게 우선분양권을 인정하여 원고의 청구가 기각되었다.

나. 원심 판단 내용

법률용어로서의 ‘임차인’이라는 단어가 임대차계약의 양 당사자 중 부동산을 빌리는 측의 당사자라는 사실은 굳이 법률가가 아니라도 잘 알고 있으나, 법률문언의 올바른 의미를 밝히기 위해 법률용어로서의 의미만이 아니라 그 법률이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적 목표와 우리 사회가 법체계 전체를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가치를 아울러 고려하여야 한다. 이러한 법해석의 관점에서 하급심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갖는다. 아버지가 무주택자이고 임대주택의 실수요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정에 의하여 계약상의 임차명의인이 아니라고 하여 그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 임대주택법의 공익적 목적과 계획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임대주택법상의 임차인의 요건을 문언적, 형식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사안에서 실질적인 측면에서 사회통념상 임차인으로 관념될 수 있는 아버지를 임대주택법상의 임차인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법은 장래 발생 가능한 다양한 사안을 예상하고 미리 만들어두는 일종의 기성복 같은 것이다. 아무리 다양한 치수의 옷을 만들어 두어도 팔이 길거나 짧은 사람이 나오게 되는데 미리 만들어 둔 옷 치수에 맞지 않다고 하여 당신에게 줄 옷은 없다고 할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하급심 판결은 입법부가 만든 법률을 최종적으로 해석하고 집행하는 법원으로서는 어느 정도 수선의 의무와 권리를 가진다고 설명한다. 나아가서 이러한 권리와 의무는 의회가 만든 법률을 법원이 제멋대로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법률이 의도된 본래의 의미를 갖도록 보완하는 것이고 대한민국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우리 헌법체계의 일부라는 것이다. 결국 재판부를 구성하고 있는 세 명의 판사는 임대주택법상의 임차인을 해석함에 있어 예외적인 사정을 참작한다는 뜻에서 실질적 의미의 임차인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주요 쟁점

가. 계약당사자의 확정 문제

임대차계약의 당사자로서의 ‘임차인’을 어떻게 특정할 것인지가 쟁점이 되었다. 즉, 임대주택법상 임차인의 요건을 문언적, 형식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사안에서 실질적인 측면에서 사회통념상 ‘임차인’으로 인정될 수 있는 자를 임차인으로 확정하여야 하는지가 문제 된 사안이다. 법률상의 문언적, 형식적 해석을 도외시하고 특별한 사정이라는 구체적인 내용을 들어 실질적인 기준으로 당사자를 확정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점은 없는지 말이다.

나.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의 법해석 기준의 문제

이 사건 대법원 판단이 있기 이전에는 법해석의 원칙으로서 추구하는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에 대하여 우열을 논하기 어려운 문제로서 끝없이 양자택일해야하는 가치로 생각하여 온 측면이 있었다. 구체적 타당성을 기하자니 법적 안정성에 손상을 가져오게 되고, 법적 안정성을 추구하자니 구체적 타당성을 잃게 된다는 논리가 지배적이었다. 대법원에서는 이번 사건을 통하여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의 가치판단의 우열에 대하여 정면으로 다루었다.

판례 해설

가.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의 법해석 가치에 대하여

법은 원칙적으로 불특정 다수인에 대하여 동일한 구속력을 갖는 사회의 보편타당한 규범이므로 이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법의 표준적 의미를 밝혀 객관적 타당성이 있도록 하여야 하고, 가급적 모든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실정법이란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사안을 염두에 두고 규정되기 마련이므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안에서 그 법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구체적 사안에 맞는 가장 타당한 해결이 될 수 있도록, 즉 구체적 타당성을 가지도록 해석할 것도 요구된다. 요컨대 법해석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법적 안정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구체적인 타당성을 찾는 데에 두어야 할 것이다. 가능한 한 법률에 사용된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에 충실하게 해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나아가 법률의 입법취지와 목적, 연혁, 법질서 전체와의 조화, 다른 법령과의 관계 등을 고려하여 체계적・논리적 해석방법을 추가 동원하여야 한다. 한편, 법률의 문언 자체가 비교적 명확한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원칙적으로 더 이상 다른 해석방법은 활용할 필요가 없거나 제한될 수밖에 없고, 어떠한 법률의 규정에서 사용된 용어에 관하여 그 법률 및 규정의 입법취지와 목적을 중시하여 문언의 통상적 의미와 다르게 해석하려 하더라도 당해 법률 내의 다른 규정들 및 다른 법률과의 체계적 관련성 내지 전체 법체계와의 조화를 무시할 수 없으므로, 거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나. ‘임차인’이라는 계약당사자 확정 문제

임대주택법에서 사용된 임차인의 개념은 임대주택을 건설하여 임대의무기간 동안 임차 사용하다가 그 기간이 경과하면 무주택 등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임차인에게 우선분양함으로써 임대주택의 건설을 촉진하고 국민주거생활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입법목적의 근간이 되는 개념이다.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해석되지 않으면 임대사업자와 임차인 등이 법과 계약에서 정한 의무를 이행하고 권리를 실현함에 있어서 상당한 혼란과 지장이 초래될 것이다. 임대주택법상 임대주택의 임차인에 대하여 특별한 규정은 없고, 이른바 실질적 의미의 임차인을 포함한다는 규정도 없다. 그렇다면 일반법인 민법의 규정과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이해되는 임차인의 의미로 돌아가 판단할 수밖에 없다. 즉, 임대차계약에서 목적물의 사용수익권을 가짐과 동시에 차임지급의무를 부담하는 측의 일방당사자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문언에 충실하면서도 가장 보편타당한 해석이라는 것이다. 임대주택법은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추고 선정절차를 거친 자로서 일정한 형식의 계약서 작성을 통하여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자를 임차인으로 취급하면서 계약체결 당사자로서의 임차인과 그 임대주택에 실제로 거주하는 자가 함부로 분리되는 것을 불허하는 취지임이 분명하다. 임대주택법에서 말하는 ‘임차인’이란 임대주택법에 따라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그 법의 규율을 받으면서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여야 할 당사자로서의 임차인이라고 하여야 한다.

하급심에서는 임대차를 통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재정적 부담 또는 실제 거주자와 같은 실질적 측면에서 사회통념상 임차인으로 여겨지는 자를 ‘실질적 의미의 임차인’ 이라 하였다. 법상 임차인의 의미를 확대하거나 변경하여 해석하는 것은 실질적 임차인의 개념이 모호한데다가 그 판단 기준으로 거론되는 것들이 임대차계약 이면의 사정 또는 임대주택에 대한 다양한 사용이나 수익의 방식 등에 불과하다는 점, 그러한 해석은 임대주택법의 취지와 전체 법체계, 법률용어의 일반적 의미에 반할 뿐 아니라 상대방 당사자인 임대사업자측의 의사와 신뢰에 반하는 것인 점, 나아가 임대주택법에 따른 임대주택의 공급 및 관리에도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하급심처럼 명확하지 아니한 ‘실질적 임차인’의 개념을 끌어들여 임차인을 확대한다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던 임차인이 중도에 우선분양전환권자로서의 자격요건을 상실한 후 무주택자 등 자격요건을 갖춘 친인척을 입주시키고 그를 내세워 임대주택을 분양받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임대주택법의 취지를 몰각시킬 우려가 있어 임대주택법을 포함하여 법질서의 규범성과 안정성을 크게 해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다. 대법원의 이례적 사실 확정

대법원에서는 이례적으로 법률판단의 기초가 되는 사실판단을 하고 있다. 하급심에서 인정한 사실관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① 원고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행위를 한 자는 딸이고 그 임대차계약서상 임차인 명의도 딸로 되어 있으며, 그것이 특별히 타인을 위한 대리행위라든지 제3자를 위한 계약으로서 체결되는 것이라는 등의 사정은 전혀 나타나 있지 않은 점 
② 이 사건 임대차계약은 임대주택법이 규율하는대로 일정한 자격요건과 필요한 구비서류를 갖추어 체결되었을 터인데 그러한 것들도 모두 딸을 기준으로 구비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 
③ 아버지가 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딸에게 임대차계약을 체결을 부탁하였음에도 딸은 계약과정에서 단지 실수로 업무를 잘못 처리한 것에 불과한 것인지에 관하여는, 이에 부합하는 증거로 하급심이 채용한 서증이 있으나 이는 딸인 피고 본인의 인증자술서에 불과하여 그대로 믿기 어렵고, 오히려 딸인 피고가 변론기일에 출석하여 “피고인 아버지의 보증채무를 피하기 위하여 딸인 피고가 아버지의 돈을 보관하고 있다가 (...) 딸 명의로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고 진술한 것에 의해 피고들은 대외적인 법률행위는 아버지 명의로 하지 않을 의도였다고 추측되는 점 
④ 피고들이 주장하는 특수한 사정들이란 모두 그들 내부의 문제에 불과할 뿐이고, 계약 당시 원고측도 그러한 특수한 사정을 잘 알면서 계약의 명의와 관계없이 계약당사자를 아버지로 한다거나 계약에 따른 법률효과를 아예 직접 아버지에게 귀속시키기로 한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에 관한 증거자료는 전혀 보이지 않는 점 
⑤ 이 사건 임대차계약을 위한 보증금이 아버지의 자금이었다는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로는 딸의 자술서만 있을 뿐 금융자료 등 객관적인 자료는 제출되지 않은 점 
⑥ 아버지가 이 사건 임대주택에 주민등록을 하고 계속 거주하였다고는 하나, 딸 역시 이 사건 임대계약상의 입주일 무렵에 임대주택으로 주민등록을 전입신고를 한 이래 중간에 합계 1년 6개월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 사건 임대주택의 분양전환 무렵까지 계속 그곳에 주민등록을 하고 있었던 사실을 인정한 점 등을 살펴보면 임대차계약체결행위를 실제로 하였고 계약서상 임차인으로 표시된 딸이 당사자라는 것이다.

라. 소결

대법원은 원심판단(일명,아름다운 판결)에 대하여, 특별하고도 예외적인 사정을 들어 실질적 의미의 임차인이라고 확대하는 등 임대주택법상의 임차인 개념의 해석에 관한 법리, 임대차계약 당사자의 확정 내지 계약의 해석에 관한 법리, 처분문서의 증명력 등 증거법칙을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배척한 하급심의 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결론

대상판결은 법해석의 목표인 구체적 타당성을 추구하는 것은 옳은 일이나 어디까지나 법적 안정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라고 하는 한계를 명확히 한 판결로 높은 가치가 있다고 본다. 법률가들이 추구해야 할 법해석의 목표가치로서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을 들고 있으면서도, 이 두 가치가 상충할 때 어느 것을 우선하여 할 것인지 항상 고민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다. 어느 한쪽의 가치를 추구하다 보면 다른 가치를 훼손하는 것처럼 이해되거나 양자택일하여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고 생각한다. 법은 원칙적으로 불특정 동일한 구속력을 갖는 보편타당한 규범이어야 하는데 만일 법률해석의 본질과 원칙에서 벗어나 당해 사건의 구체적 타당성 확보라는 명분으로 일회적이고 예외적인 해석이 허용된다면, 법원이 언제 그와 같은 법해석의 잣대를 들이댈지 알 수 없는 국민은 법관이 법률에 의한 재판이 아닌 자의적인 재판을 한다는 의심을 떨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법원의 재판에 국민의 신뢰를 크게 해치게 되며, 모든 분쟁을 법원에 가져가 보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게 할 위험성이 있으니 조심하여야 한다는 대법원의 견해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판단하는 의미를 지닌다.

구체적 타당성의 추구나 법적 안정성의 도모는 국민에게 모두 이익이 되는 것이다. 다만 다수 국민의 잠재적인 법률적 비용절감과 예견가능성을 통한 법적 안정감을 주는 법적 안정성이라는 가치가 더 우월하다는 것을 명확히 한 판결이고 이후 대법원에서는 이 사건 판단을 인용하여 법적 안정성을 추구하고 있다.

담당 변호사의 직강 포인트

계약당사자의 확정과 관련된 법적 다툼에 대하여는 이 사건 이전에도 수많은 판례가 있어 이론상으로는 그 기준이 명확했다. 그러나 법해석의 원칙으로서 추구하는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을 끝없이 양자택일해야 하는 가치로 생각하여 온 데 대하여 대법원에서 그 기준을 명확히 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사건 제1심을 진행하는데 있어서는 이전의 유사한 사건들처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원심에 이르러서는 당사자가 주장하지도 않은 내용을 해석의 영역으로 끌여들여 사건의 본질과 동떨어진 온갖 시적 표현과 수사를 섞어 왜곡에 가까운 판단을 하여 당황했다. 대법원에 상고를 하고는 상고이유서에 ‘이런 원심판단을 바로잡는 기능을 위하여 대법원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용감하게 썼던 기억이 난다. 오래전에는 기존 판례를 전원합의체판결로 바꾸게 한 적도 있지만 이 사건은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전성이라는 난제에 대하여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측면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이론적인 쟁점에 대하여 정리하는데 3년여 기간이 걸렸다는 점에서는 아쉬운 면이 있다.
 

 

illustrator 이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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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변호사
사법연수원21기로 대한법률구조공단 대전지부에서 근무했고, 한남대학교법과대학 형사법 겸임교수로 활동하였다. 행정법학회, 지방자치법학회에서 활동하고 대전에 있는 법무법인 청남로 대표변호사로서 공증과 송무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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