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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공연성에 관한 전파가능성 법리의 유지여부
대법원 2020. 11. 19. 선고 2020도5813 전원합의체 판결
곽지현 변호사
2024.01.25

'2023년 엘박스에서 가장 많이 복사된 판례' 의 담당 변호사가 직접 판례를 해설해 드립니다.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공연성에 관한 전파가능성 법리의 유지여부

대법원 2020. 11. 19. 선고 2020도5813 전원합의체 판결

사실관계

피고인과 피해자(사건 당시 47세)는 같은 마을에 사는 이웃 주민이다. 피고인은 2018. 3. 7. 16:00경부터 같은 날 17:00경까지 전남 고흥군에 있는 피해자의 집 뒷길에서 피고인의 남편인 乙 및 피해자의 친척인 丙이 듣는 가운데 피해자에게 “저것이 징역 살다 온 전과자이다. 전과자가 늙은 부모 피를 빨아먹고 내려온 놈이다.”라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피고인은 2018. 3. 8. 10:00경 마을 경로당에서 평소 감정이 좋지 않던 피해자를 보고 다가가 피해자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피해자를 바닥에 넘어뜨려 피해자에게 약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목 부위 열상을 가하였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멱살을 잡아당기던 중 피해자의 처인 丁로부터 제지당하자 화가 나 丁의 머리카락을 잡아 흔들고, 발로 丁의 가슴 부위를 차 폭행하였다. 

피고인은 2018. 4. 2. 10:40경 마을 버스승강장 앞에서 평소 감정이 좋지 않던 피해자와 욕설을 하며 말다툼하면서 피해자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대야에 들고 있던 바닷물을 피해자의 얼굴을 향해 뿌려 피해자를 폭행하였다.

주요 쟁점

대법원 판례는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으로서 공연성에 관하여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밝혀 왔고, 이는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법원은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에 관하여 개별적으로 소수의 사람에게 사실을 적시하였더라도 그 상대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적시된 사실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때에는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일관되게 판시함으로써, 이른바 전파가능성 이론은 공연성에 관한 확립된 법리로 정착되었다. 전파가능성 이론에 대해서는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유추해석으로 문언의 통상적 의미를 벗어나 형사처벌 범위를 확장한다는 거센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 사건의 쟁점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 대하여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례에 의해 확립된 전파가능성 이론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폐기할 것인지 여부이다. 나아가 전파가능성 이론을 유지하더라도 공연성의 판단 기준이나 적용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법리를 제시할 수 있는지 여부도 추가적인 쟁점이다.

사건의 경과

가. 제1심 판결의 요지

제1심은 “피고인은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나, 피해자 및 목격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하면 각 범죄사실이 넉넉히 인정되므로,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 피고인이 반성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는 점, 노약자를 포함한 여러 명을 상대로 폭력행위를 반복한 점,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은 점, 동종 전력이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라고 판시하며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하였다(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2018고단2534 상해, 명예훼손, 폭행 판결).

나. 제2심 판결의 요지

제2심은 “피해자 및 피해자의 친척인 병의 일치된 진술에 의하여 피고인이 큰소리로 피해자가 전과자라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인정되고, 을이 피해자의 전과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거나, 병이 피해자와 친척 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발언이 전파될 가능성은 있는 점을 더하여 보면, 피고인의 행위에 공연성이 인정될 뿐만 아니라 명예훼손에 대한 고의도 인정된다.”라고 판시하며 징역 4월을 선고하였다(광주지방법원 2020노359 판결).

다.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공연성에 관한 전파가능성 법리는 대법원이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시켜 온 것으로서 현재에도 여전히 법리적으로나 현실적인 측면에 비추어 타당하므로 유지되어야 한다. 피해자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던 병이 피해자와 친척 관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파가능성이 부정된다고 볼 수 없고, 피고인은 공개된 장소에서 큰 소리로 말하여 다른 마을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으므로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였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판시하며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판례 해설

가.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으로서 공연성

형법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형법 제307조 제1항). 명예훼손죄의 관련 처벌 규정들은 명예에 대한 침해가 ‘공연히’ 또는 ‘공공연하게’ 이루어질 것을 요구하는데, 공연성을 구성요건으로 요구하는 것은 사회에 유포되어 사회적으로 유해한 명예훼손 행위만을 처벌함으로써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으로서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법원과 통설의 입장이 일치하고 있다.

나. 대법원 판례에 의해 확립된 전파가능성 이론

대법원은 개별적으로 소수의 사람에게 사실을 적시하였더라도 그 상대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적시된 사실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때에는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일관되게 판시함으로써, 전파가능성 이론은 판례에 의해 확립된 법리가 되었다. 전파가능성 이론에 대해서는 공연성 요건이 무의미하게 되고 처벌이 확대되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전파가능성 이론이 법리적으로나 현실적인 측면에 비추어 여전히 타당하므로 유지되어야만 한다고 판시하였다. 특히 인터넷, 모바일 기술의 발달과 보편화로 SNS, 이메일, 포털사이트 등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이 급증해가는 현실에서, 특정된 소수의 상대방으로는 공연성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엄격한 판단 기준은 실질적인 공연성 판단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대상판결은 명예훼손 사건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주된 근거로 삼고 있다.

다. 다른 마을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로 말하여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였는지 여부

대상판결은 “피고인과 피해자는 여러 가지 문제로 이미 갈등관계에 있었고, 사건 당시 피고인은 피해자와 말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발언을 하게 된 점, 피고인의 남편인 을과 피해자의 처인 정은 피고인과 피해자가 큰 소리로 다투는 소리를 듣고 각자의 집에서 나오게 된 점, 피해자와 정은 ‘병 이외에도 마을 사람들이 들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한 점, 피고인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앞에서도 피해자가 아주 질이 나쁜 전과자라고 큰 소리로 수 회 소리치기도 한 점 등을 종합할 때, 피고인은 싸움 과정에서 공개된 장소에서 큰 소리로 말하여 다른 마을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던 것으로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였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공연성이 인정된다”라고 판시하였다. 즉, 전파가능성 이론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행위는 그 자체로 공연성 요건을 충족한다고 본 것이다.

라. 병으로부터 전파가능성이 있는지 여부

대상판결은 “이 사건이 발생한 마을은 피해자와 그 친척인 병과 같은 성씨를 가진 집성촌으로 다수인이 피해자와 친척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점, 병은 ‘피해자가 전과자라는 사실을 처음 들었다’라고 진술하여 피해자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와 병 사이의 촌수나 구체적인 친밀 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점, 적시된 사실이 주변에 회자될 가능성이 큰 내용이라는 점 등을 종합하면, 병이 피해자와 친척 관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파가능성이 부정된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다. 대상판결은 설령 피고인이 다른 마을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로 말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친척인 병이 듣는 가운데 “피해자가 전과자이다”라는 사실을 적시한 것은, 병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적시된 사실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마. 대상판결에 대한 의견

1) 다른 마을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로 말한 사실에 대한 의문점

제1심부터 상고심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이 큰 소리로 말하여 다른 마을 사람들이 들었는지 여부는 공소사실의 내용에 포함된 적이 없다. 위 사실은 상고심에 이르기까지 쟁점이 아니었고, 이에 따라 충분한 심리나 증명이 이루어진 적도 없다. 상고심이 위 사실을 인정한 근거 중 유일한 증거는 피해자와 피해자의 처인 정이 ‘병 이외에도 마을 사람들이 들었다’라는 진술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다른 마을 사람들이 들었다”라는 사실을 피해자와 정의 진술을 통해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마을 사람들’의 인적 사항조차 전혀 특정된 바가 없고, 해당 다른 마을 사람의 직접적인 진술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마을 사람이 들었다’라는 사실은 도저히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피해자와 피해자의 처인 정의 진술은 중립적인 제3자의 진술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의 진술증거가 확보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다른 마을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로 말한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본 대상판결은 부당한 측면이 있다.

2) 전파가능성 이론에 대한 의문점

대상판결은 전파가능성 이론에 따라 가벌성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장되는 문제는 적시의 상대방과 피고인 또는 피해자와의 관계에 따라 전파가능성을 부정하는 등 판단 기준을 사례별로 유형화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방과 피고인 또는 피해자와의 관계 등을 기초로 하더라도 전파가능성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특히 직장동료나 친구의 경우 어느 정도 밀접한 관계에 있어야 전파가능성이 없는지를 객관화하기 어렵고, 이를 입증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대상판결에서도 담당 변호사는 상고이유서에서 “피해자의 친구에게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을 적시한 사안에서 전파가능성을 부정한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0. 2. 11. 선고 99도4579 판결)”를 인용하면서 친구보다 가까운 혈연 관계인 친척에게 사실을 적시한 이 사건의 경우 전파가능성은 부정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은 피해자의 친척에게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전파가능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는바, 인적 관계를 근거로 한 전파가능성의 판단 기준은 일관성이 없고 불명확하다.

담당 변호사의 직강 포인트

대법원의 전파가능성 이론은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규정한 문언상 의미를 벗어나 처벌 범위를 넓힌다는 점에서 꾸준히 학계의 비판을 받아왔다. 대상판결을 통해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왔던 전파가능성 이론이 폐기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이번에는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전파가능성 이론은 폐기되어야 할 법리이고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폐기될 법리라고 본다. 대상판결의 반대의견 역시 다양한 논거를 제시하며 형법 제307조 제1항, 제2항에 규정된 공연성은 전파가능성을 포섭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여전히 현실적인 처벌의 필요성만을 우선시하며 전파가능성 이론을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비교법적으로도 우리나라처럼 진실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형사처벌하는 나라는 드물고, UN도 우리나라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라고 반복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할 때에도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이 전파가능성 이론의 주요한 근거로 삼고 있는 현실적 처벌의 필요성이라는 논거는 큰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죄형법정주의에 입각할 때 처벌의 필요성이 있다면 반드시 입법권자에 의한 법률 개정을 통해 처벌 대상에 포함시켜야만 하고, 법률 개정 없이 법원의 해석만으로 처벌 대상을 넓히고 국민의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뿐만 아니라 삼권분립의 원리에도 반할 위험이 있다.
전파가능성 이론에 따르면 동일한 인적 관계를 전제로 미묘하게 다른 사실관계를 대상으로 명예훼손죄의 성립여부를 명확히 판단하기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진다는 문제도 파생된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이 친구, 친척, 직장동료 등 다양한 사실관계를 대상으로 한 판례를 비교함으로써 지적한 부분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상판결이 전파가능성 이론의 적용 여부를 떠나서 피고인이 다른 마을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로 말한 사실이 입증되었으므로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본 점도 의문이 남는다. 정작 피고인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마을 사람의 진술은 전무한 상태에서, 피해자와 피해자의 처가 “피고인의 목소리를 마을 사람들이 들었을 것이다”라는 추측 내지 주관적 의견에 가까운 진술을 그대로 객관적 사실로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illustrator 이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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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지현 변호사
이화여자대학교 법학박사로 형사법을 전공했으며, 법률사무소 편의 대표변호사로 형사・이혼사건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사법시험 합격 후 대법원 국선변호인으로 근무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자권익보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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